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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남는다. 마지막 전세기에 자국민을 무사히 태운 한국 영사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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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남는다. 마지막 전세기에 자국민을 무사히 태운 한국 영사

mmplz 2020. 5. 20. 20:13

나는 남는다. 마지막 전세기에 자국민을 무사히 태운 한국 영사

202026Mag2news

 

신형폐렴 감염원으로 알려진 중국 우한시에서 자국민이 언제 귀국하고 몇 명의 감염자가 있는 것인가?”라는 정보파악에 각국 미디어도 우왕좌왕하고 있습니다만, 실제로, 무사히 귀국가능했던 그 현실을 행운이라고 각국이 자각해야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번의 무료 메일 메거진 김치파워에서는 한국 주재 31년 경력의 일본인 저자가, 우한주재한국인에게 가로막고 싶었던 수많은 검열통과를 도와 공항에 도착할 수 있도록 힘을 쓴, 어떤 우한 총영사관직원의 일화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대량의 눈물

 

우한주재하는 한국인 701명이, 21일까지 한국에 돌아왔습니다. 한국내의 수용시설이 따듯하게 맞아 주었기 때문입니다. 아산과 진천이라고 하는 2곳입니다. 아산은 충청남도에 있는 경찰인재개발원, 진천은 충청북도에 있는 국가 공무원인재개발원입니다. 시설이라고 하기보다는 기설주변에 사는 주민들이 180도 태도를 바꾸어 주었기 때문입니다.

 

수용시설로서의 희생자였던 처음에는, 주민들은 경운기, 트랙터까지 가지고와서 필사적으로 오지말라라며 집회를 가졌습니다. 하지만, SNS등의 부름으로, 똑 같은 국가의 주민이니까 따듯하게 맞아 주자고 하는 코멘트가 확산하고, 1진이 도착하는 131일에는 환영합니다.” 라고 하는 현수막이 설치될때까지의 변화. 우한에서 돌아오는 교민 일동, 보도에서는 없었지만, 아마도 눈물을 흘리며 감사했었음에 틀림 없습니다.

 

그리고, 눈물이 또 다른 주인공으로부터 흐릅니다. 연합뉴스등을 참고로 써봅니다.

 

주인공은 정다운이라고 하는 38세의 영사. 후베이성 우한의 현지에서 한국인 철수작업의 실무에 책임을 지는 정영사는, 동포와 SNS체팅룸에서 모두들에게 너무나 감사하고 있다고 메시지를 남겼습니다. 정영사는, 한국에서 경찰관으로서 일한 다음 3년전에 우한총영사관직원으로서 와서 교민보호담당영사를 수행하고 있습니다. 그는, 총영사관의 동료영사들과 현지인 직원, 해외 동포등이 참가하고 있는 단체의 채팅룸에서 마지막 전세기에 33명 무사탑승후 본부에 이륙전문을 보내고, 집에 돌아오는 자동차 안에서 흐느껴 울었다라고 하며, 우한주재 한국인 철수작업에 협력 해주었던 동포들에게 감사의 기분을 표했습니다. 더욱이 저는 여기에 아직 남아있는 다른 고립된 분들을 위해서 일하지 않으면 안된다고하며, 남아 있는 동포들에게 마스크 등 구호물자를 나누어 주지 않으면 안되지만, 조금 만 더 참아 주었으면 한다고 호소 했습니다. 정영사는, 부인과 2명의 아이다 지난번 전세기로 국내로 보냈습니다. 혼자서 우한에 남은 정영사는, 가족에게 미안한 기분도 전했습니다. 그는 “9, 7살의 2명의 장난꾸러기 아이들을 데리고 기행기에 태웠지만, 처에게는 작별인사도 못했다.”, “21실의 좁은 격리실에 아이들 2명과 함께 어떻게든 노력하고 있는 처가 생각나, 정말로 미안한 기본에 마음이 아팠다고 말했습니다.

 

우한의 한국인 소사이어티에 따르면, 우한교민 합쳐 701명을 전세기에 태울때까지 총영사관의 직원과 우한교민들의 끝을 모를 노력이 있던 점. 그들은 남아 있는 동포를 1명이라도 많이 비행기에 태우려고, 수일간 수면도 줄이면서 동포를 도왔다고 합니다. 우선, 후베이성 외곽지역에 사는 교민을 안전하게 우한천하공항까지 오게 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이것이 최대의 난관이었습니다. 후베이성 전체가 봉쇄되어 있기 때문에, 우한 외곽도시에 있는 교민들이 우한까지 갈길은 험했습니다. 후베이성 외곽에 거주하는 교민은, 전세기의 탑승을 신청하고 간신히 차를 손에 넣었으나, 주요 도로가 통째로 설치된 공안의 검문소로 정체되어 있는 상황에 놓입니다. 우한외곽지역의 주민이 우한의 사람들의 진입을 저지하려고 자경단을 조직하여, 지역도로의 어기저기에 다양한 장해물을 설치한 것입니다. 우한교민들은 SNS의 채팅룸을 통해서, 막혀 있는 밀과 우회로를 신속하게 공유 했습니다. 재우한 한국인회가 동포의 신고를 모아서 우한총영사관에 도움을 요청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우한총영사관의 요청으로, 후베이성정부가 전세기편에 타는 재우한한국인에게 통행증을 발급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각지방의 검문소까지 통지가 되지 않아, 여기가 또 노력이 필요 했습니다. 이것을 위해 총영사관은 각 검문소에 하나하나 사정을 설명하고 길을 열어 주었으면 한다고 부탁을 하지 않으면 안되는 사정의 계속. 이러한 방식으로 적어도 20개 가량의 장소의 검문소를 열어, 전세기탑승자 70명 가량이 이 곤란한 과정을 거쳐 우한천하공항에 도착하는 것이 가능했습니다.

 

우한에 남기로 한 교민도 적극적으로 그들을 도와 주었다고 합니다. 전세기 탑승자를 위해 분주하게 나왔기 때문에 있을 곳이 없는 교민에게, 잘 곳이나 음식을 제공하고, 개인차량을 사용해서 교민을 천하공항까지 이동시켜 줍니다. 현재 우한에서는 허가를 받지 않은 차량은 통행이 금지되어 있으며, 허가 된 차량이 없으면 화물을 가지고 걸어서 이동하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

 

후베이성 한국인 회장 최덕기씨는 연합 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비행기라면 날라가 버리면 그만이지만, 통행중지가 되어 있는 지상의 길을 열어서 통과하는 것이 어려웠습니다.”라고 하며 한편의 드라마 같았다라고 말했습니다. 특히, “교민철수업무의 실무책임을 진 정영사가, 책임감을 가지고 임무를 통솔해 주었습니다.”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그는 정영사가 업무에 열심인 모습을 보고, 이 사람은 혼을 걸고 일을하고 잇는 사람이라고 느꼈습니다.”라고 하며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책임감과 사명감을 가지고 일하는 사람이라고 말했습니다. 정영사는 경찰관으로서 한국내에서 근무한 뒤, 우한 총영사관에 와서교민 보호담당영사로서 3년간 일하고 있습니다.

 

어제인 21일까지, 우한 주재 한국인 701명이 전세기로 한국에 돌아 왔습니다. 간단히 비행기에 타고 돌아오는 것처럼 우리들에게는 보였겠지만, 실은 수많은 난관을 해결하고 가능했던 일입니다. 위에도 쓴 것과 같이 멀리 살고 있는 교민을 비행장까지 가게한 것이 엄청나게 어려웠습니다. 우한 사람들의 진입 저지로서 자경단을 조직하여 지역도로의 여기저기에 다양한 바리케이트를 설치했습니다. 거기에 하나하나 사정하러 가서 통하게 했다고 하는, 생각만해도 머리가 아파지는 업무를 한 것입니다. 현지 한국인의 철수작업을 전면적으로 지원했던 것이 위의 주인공 정다운이라고 하는 38세의 영사입니다. 2편 전세기의 이륙을 보내고 집에가는 자동차 안에서 울었다고 하는 이야기. 임무를 다했다고 하는 안도나, 가족은 보냈지만 자신은 여기에 남지 않으면 안된다고 하는 가족에게 대한 미안함, 이러한 다양한 것이 북받쳐 온 대량의 눈물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본인은 그런 일은 생각하지 않았다고 생각하지만, 이러한 영웅이 있어 주어서, 모든일은 성취되는 것일 것이라고 이번의 이 기사를 보고 또 새롭게 느꼈습니다. 인간이란 놀라운 것입니다.

 

 

 

 

 

https://article.yahoo.co.jp/detail/cc15abd519b65dc805c3abceecce840d6aa2ece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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