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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에스기 켄신과 다케다신겐의 일대일 싸움은 정말로 있었던 것일까?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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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에스기 켄신과 다케다신겐의 일대일 싸움은 정말로 있었던 것일까?

mmplz 2020. 8. 12. 20:39

우에스기 켄신과 다케다신겐의 일대일 싸움은 정말로 있었던 것일까?

 

2020812JBpress

 

(나이시 마사히코 乃至 政彦, 역사가) 가와나카지마 전투에서 우에스기 켄신과 다케다신겐의 일대일 승부는 있었을까? 역사팬이 아니더라도 신경 쓰이는 전설이지만, 물리적인 증거가 없는 이상, 기존의 문헌정보를 기초로해서, 상상할 수 밖에 없습니다. 당시의 편지와 표창장, “고요군감이나, “켄신공어연보의 군사기록이나, 그 밖의 관련사료를 힌트로 고찰해보겠습니다.

 

*전설을 찾는 단서

에이로쿠 4(1561)의 제4차 가와나카지마전투에서, 우에스기 마사토라(켄신)와 다케다 신겐의 일대일 승부를 했는지에 대한 큰 수수께끼가 있습니다. 이것을 밝히는 방법을 생각하고 싶습니다.

 

우선 생각이 나는 것은, 다케다 신겐의 혈판장등을 DNA감정해서, 다음에 켄신이 가와나카지마에서 사용했다고 생각되는 큰칼의 조사해서, 검날의 묻은 혈흔을 검출하는 것입니다. 거기에 신겐과 일치하는 피의 흔적을 검출 가능하다면 일대일 승부는 있었다라고 확언하는 것이 가능할 것입니다.

 

하지만, 실제로 가능할지는 의문입니다. 459년 전의 혈흔이, 당시의 금속에 감정가능한 정도로 남아있는가가 불명확하기 때문입니다. 덤으로 이 때 마사토라가 사용한 큰칼은, 일반적으로는 아즈키나가미츠 (:가마쿠라시대에 만들어진 일본도)”라고 전해집니다. 하지만, 그러한 이름의 큰칼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아즈키나가미츠라고하는 것은, 나중에 지어진 애칭인 것입니다. 그리고 어떤 큰칼이 그렇게 불리었는지는 불명확합니다. 저는, 히젠의 쿠니요시가 아니었나하고 보고 있으나, 이것도 지금은 행방불명이라고 합니다.

 

, 물리적인 증거를 찾아내는 것이 불가능한 것이 현재 상황입니다. 그렇다면, 기존의 문헌정보를 기초로 상상할 수밖에 없습니다. 당시의 편지와 표창장, 그리고 고요군감이나 켄신공어연보”, 그 밖의 관련된 군기류를 힌트로 생각해 보겠습니다.

 

*결전부대로써의 기마무사

양군이 가와나카지마에서 결전을 하기로 했을 때, 마사토라의 목적은 명확했습니다. 신겐 한 명을 살해하는 것입니다. 이 시대의 대명은, 어디나 공통적으로 군단 최강의 깃발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 구성원은 기본적으로, 대명의 성아래에 거주하는 친위대로, 무장도 국내 최강이었음에 분명합니다.

 

대명의 기마무사는, 결전시의 대명의 공격 또는 방위에 사용 되었습니다. 오케하자마 전투에서는 오다노부나가가 기마무사를 공격대로써 적본진에 투입해 공격 했습니다. 대항하는 이마가와 요시모토도, 기마무사에게 원형대형을 유지시켜 자신의 방위대로 사용 했습니다. 최강의 부대끼리 싸워서, 최종적으로는 노부나가의 기마무사가 승리 했습니다. 오다군이 요시모토의 머리를 얻은 것입니다. 단지, 노부나가도 요시모토도 이 시대에서는 당연한 군제와 용병으로 싸웠으며, 기마무사들기리의 대결은 우발적으로 일어난(또는 강인하게 일어났습니다) 사건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기마무사끼리의 결전을, 인위적으로 유발시키는 시스템을 집어넣은 인물이 있었습니다. 우에스기 켄신입니다. 마사토라는 기마무사를 공수양용의 결전부대로써 활용 했습니다. 기마무사 이외의 모든 부대에게, 적의 모든 부대를 정지, 구속 시키고, 스스로의 기마무사를 적의 기마무사에게 돌진 시키는 스스로 맞겨룸을 거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다케다 신겐은 마사토라의 전법을 차현이라고 불렀습니다.

 

이 전법이 잘 풀리면, 마사토라 본대에 해당하는 기마무사대는, 적의 대장 신겐을 참살하는 것이 됩니다. 마사토라는 최고급의 검객과 갑옷을 장비하고, 무예에 실력도 달인급이었습니다. 신겐 토벌에 의욕 또한 누구보다도 높았습니다. 기마무사에게 맏기기 보다는 스스로 맞겨룸을 하는 것이 합리적입니다. 4차 가와나카지마 전투에 있어서, 마사토라는 이러한 숙련된 용병을 사용하여, 신겐 상대로 일대일 승부를 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의도대로의 정면대결

합전은 마사토라의 의도대로 시작되었습니다. 우에스기군의 정예병이, 다케다군의 움직임을 전력으로 봉쇄합니다. 그 가운데, 다케다군의 우익으로 마사토라의 기마무사가 습격을 합니다. 여기에 오케하자마 전투와 동일하게 기마무사끼리의 대결이 돌발한 것입니다.

 

이때, 본진에 있었을 야마모토 칸스케가 우에스기군에 살해당합니다. 더욱이 별부대로 있었던 신겐의 실제 동생인 다케다 노부시게도 전사했습니다. 그 밖에 모로즈미 토라미츠나 하시카노 타다츠쿠등의 다수의 중신이 당했습니다. 차현의 전법이 결정적 타격을 더했습니다.

 

그리고 신겐 후계자인 다케다 요시노부와 신겐 자신도 누군가에게 공격을 받았습니다. 다케다족의 문헌인 고요군감” [품제32]에 따르면, 요시노부는 두곳에 상처를”, 신겐은 팔에 두곳을 부상 당했다고 합니다. 일차자료는 아니지만, 초기군기가 일부러 자군의 열세를 과장하는 일 없이, 신겐의 부상이 확실한 사실이라고 봐도 틀림 없을 것입니다. 4차 가와나카지마 전투에 있어서 다케다군의 피해를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조직으로 예를 들면, 도요토미 히데나카, 쿠로다 요시타카, 하치즈카 마사카츠, 가토 요시아키급이 한번에 전사하는 정도의 상황이었습니다. 이것은 지난번 서술한 것과 같이, 이 전쟁이 제3차까지의 국지전과 다른 커다란 한판이었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고요군감의 설명

 

그런데, 신겐의 부상을 기록한 고요군감의 설명을 따라가 보겠습니다. 이 책에서는 연두빛색의 진 하오리를 입은 무장이, 하얀 수건으로 머리를 싸매고, 불그스름한 말에 올라, 3(90)의 칼을 꺼내들고, 평상 위에 있던 다케다 신겐공의 앞에 쏜살같이 습격해왔습니다. 그리고 3척 큰칼로 쳐왔습니다. 신겐공은 일어서서 군사깃발로 흘려쳤지만, 나중에 보니 거기에는 8개의 칼자국이 남아 있었다고 적혀 있습니다.

 

그리고, 신겐은 상처입힌 무장에 대한 정보가 불명확해서, “나중에 물어보니, 그 무장은 우에스기 마사토라였다라고 마사토라 본인이었다고 하는 소문이 있던 것을 집필 해두었습니다. 단지, 잔정은 하면 안됩니다.

 

*근위병들이 절찬했던 일인 돌격

 

여기서 전투 직후의 사료를 보겠씁니다. 마사토라의 전공을 절찬하는 관백, 근위대의 105일자 글에, 마사토라가 일인 돌격을 한 것이 명백하게 적혀있는 것입니다.

 

“[전략]드문일은 아니지만, (당신=마사토라) 일인 돌격을 한 것은, 비교할 수 없는 것입니다. 천하의 명예라고 말해도 좋을 것입니다.[후략]”

 

여기서는, 마사토라의 일인 돌격드문일은 아니지만, “천하의 명예라고 칭찬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마사토라의 일인 돌격은 자주 사용했던 전법이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드물지 않은데다가 천하의 명예이므로, 뜻밖의 사고가 아닌, 마사토라의 계획대로였다라고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풍문에서 이야기되는 바와 같이, “짙은 안개 속에 우발적으로 발생한 조우전이라면, 이러한 표현은 되지 않았음에 틀림 없습니다. , 우에스기측의 사료켄신공어서집켄신공어연보를 보면 이것을 위해 결성된 마사토라의 기마무사의 구체적인 내역이 기록되어 있으며, 이것을 보는 한 그 용도는 명확히 기마무사끼리의 결전이 상정되어 있습니다.

 

여기까지 2개의 사료로 보면, 마사토라는 기마무사끼리의 결전을 꾀하고, 신겐은 부상시켰습니다. 단지, 누가 신겐을 부상시켰는지는, 확증은 얻을 수 없는 상황입니다. 단지, 이 글에 쓰여진 친위대의 글에서는, 마사토라가 신겐을 부상 시켰다라고 생각할 수 없었다고 생각되어집니다. 혹시 마사토라가 신겐을 직접 칼로 친 것이 명확하다면, 친위대는 반드시 그 내용을 명확히 기록해서 강조했음에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마사토라의 기마무사가 신겐의 본진을 공격한 것은 사실이라해도, 일대일 승부를 한 것까지는 인정할 수 없었던 것일 겁니다.

 

*아라카와 나가기네 VS 신겐은 사실인가?

 

이 일대일 싸움에 대해서 유명한 다른 이야기가 있습니다. 에도시대에 성립된 우에스기번의 공식 기록 켄신공어연보가 일대일 승부를 한 무장을 마사토라가 아니라고 서술한 것입니다. 아래에 부분을 인용하겠습니다.

 

“[패주하는 다케다군을 쫗아온아라카와 나가기네는 신겐은 여기에 있다라고 생각하고, 3번까지 내려쳤지만 이루지 못하고, 칼을 뺄 여유도 없는 신겐은 군대깃발로 이것을 받아 흘려쳤습니다

 

이 아라카와 나가기네는, 마사토라의 측근입니다. 공식 번사에 있는 기록이므로, 신뢰가능할 것 같은 이야기로 생각됩니다. 여기부터 다케다군의 입장으로는, 신겐이 측근에게 상처입었다고 인정하는 것은 겉모양이 나쁘다. 거기에서 고요군감에는 마사토라가 지어낸 것이다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결정적인 것이 빠져 있습니다. 좀 더 파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사료를 보고 싶습니다. 사실은 켄신공어연보에 선행하는 문헌이 있습니다. 에치고류군학자의 손에 의한 민간의 전국군기가 있습니다. 여기에 적혀있는 것은 마사토라 가신인 우사미 사다미츠의 손자를 자칭하는 인물 우사미 사다유키인(단지 이것은 가명으로, 본명은 오오제키사스케). 사다유키는, “신겐을 습격한 무장은 아라카와 나가기네다라고 그 저작물로 반복해서 주장했습니다. 예를 들면 군기 가와나카지마 도개합전전기가 있습니다. 여기에는 켄신공어연보와 거의 같은 종류의 설명이 있으며, 아라카와 나가기네가 신겐에게 일격을 가했습니다. 단지 한가지 큰 차이가 있습니다. 일대일에서 발생한 연월일이 너무나 다른 것입니다.

 

*에치고류 군학이라고 하는 조작 병법

이 군기는, 에이로쿠 4(1561)의 제4차보다도, 코우지 2(1556)의 제3차합전 묘사에 공을 들였으며, 그것도 제4차에서 죽었음이 분명한 야마모토 칸스케, 모로즈미 토라미츠, 하지카노 타다츠쿠등이 그 5년전인 이 합전에서 죽었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더욱이 이 책에는 마사토라와 신겐의 일대일 대결이 4자전쟁이 아닌, 텐몬 22(1553)의 제1차 합전의 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때, 다케다군은 마사토라가 대결을 했다고는 생각하지 못하고, 아라카와 나가기네의 일이라고 오해했다고 하는 설명도 있습니다.

 

이 군학자는, 그 밖에도 우에스기 3대 일기” “북초군기등 대량의 우에스기 계열 군기를 가명으로 작성 했습니다. 그는, 거기서 제4차 전투의 일대일 전투가 없었다고 하며, 1차 똔느 제3차 전투에 있어서, 신겐과 나가기네의 일대일 대결을 기록 했습니다. 이것은 무슨일일까요? 근원은 군학자인 우사미사다유키에게 있습니다. 그는 우사미 사다미츠의 손자를 사칭해서, 사다미츠의 전승을 모았씁니다. 그 과정에서, 사다미츠가 제4차 전투에서 그다지 활약하지 못한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이것에 곤란하게 된 사다유키는, “그래도 우리 할아버지는, 그 유명한 켄신공의 천재군사였다라고 주장하기 위해서, 가짜 지도나 가짜 표창장 및 창작 군기를 증산했습니다. 그리고 그 작품안에서, 1차와 제3차 전투를 가능한 한 화려하게 각색하고, 유명한 4차 전투를 일부러 그다지 화려하지 않게 지루한 전투였던 것처럼 고쳤습니다. 용호의 일대일 연대를 제1차로 이동시키거나, 아라카와 나가기네와 신겐의 일대일을 강조한 것이 그것입니다. 사다유키의 노력은 이윽고 결실을 맺었습니다. 그 작품이 많은 독자를 획득한 것입니다. 이것에 눈을 둔 도쿠가와어삼가의 기슈번은, “꼭 고명한 선생을 초대 했으면 한다라고 사다유키를 높은 연봉으로 초대했습니다. 이렇게해서, 켄신 유래도 아무것도 아닌 에치고류 군학및 그 독자의 켄신상이, 우에스기번으로써는 다른 장소에서 정착하게 됩니다. 사다유키는, 역사사칭과 공문서 위조의 반책 병법위작으로, 입신출세를 이룬 것입니다. 이것만이라면 단순한 희극이지만, 여기에서 큰 비극이 시작됩니다. 요네자와의 우에스기번이 정사편집 사업에 착수할 때, 사다유키의 위조문헌을 진지하게 역사자료로써 받아들인 것입니다. 그 결과, “켄신공어연보가 제4차 전투에서의 켄신과 나가기네의 일대일을 채용하게 되어버린 것입니다.

 

*다른 이야기에서 알 수 있는 사실

여기까지의 이야기를 되돌아보겠습니다.

 

다케다의 기록 고요군감, 다케다신겐을 상처입힌 무장은 마사토라라고 소문을 기록했습니다. 에도시대의 에치고류군학자는, 4차 전투의 일대일 그것을 없애려고 했씁니다. 마사토라의 친구였던 친위대는, 그 작전을 좋게 말해서, 마사토라 자신이 큰칼로 친 것을 칭찬했지만, 신겐과의 일대일을 한 것은 쓰지 않았다. 에도시대의 우에스기번은 공식사료에서, 군학자의 기록에 속아서, 4차 대전에서 아라카와 나가기네와 신겐이 일대일을 했다고 기록해버렸다.

 

이 흐름에서 알게되는 것이 있습니다. 마사토라가 센겐과 일대일 승부를 했을 가능성은 있지만, 누구의 확증을 얻지는 못했다는 것입니다. 혹시 용호상박이 확실한 사실로 인정되었다면, 근위병이나 다케다는 이것을 단정해서 썼을 것이고, 군학자가 만들어낸 이야기를 삽입할 여지도 생기지 않았음에 분명합니다. 물론 그 이후, 우에스기번이 위조문헌에 유혹되는 일도 없었음에 틀림 없습니다.

 

*안개속에 숨은 진실

 

그러면, 신겐에게 상처를 입힌 것은 누가 되는 것일지, 이것은 마사토라 자신도 몰랐을 것입니다. 마사토라는 신겐을 살해하기 위해서 적 깃발을 가진 말쪽으로 들어갔습니다. 하지만, 신겐은 보통 복수의 카게무사를 두고, “검은 갑옷에, 향기나는 두건을하고, 염주를 손에 걸은 법사 무장을 3, 한 곳에 서서, 사무라이 10명으로 둘러싸게 한다라고 하는 경계를 했습니다. “송린야화”. 그것도 전장에 방주(단지 법체가 되는 무사”)600명을 동반시켜라라고 전해지는 바와 같이, 그 신변은 법사무장들이 대체로 늘어서 있었습니다. (1573420일자 루이스 프로이스 글).  방주 두목의 다케다 본진에서, 무예에 능통한 자인 마사토라가 말 위에서 큰 칼을 휘두르며, 몇 명인가에게 상처를 입혔다고 해서, 누군가가 신겐인지 알 수 는 없습니다. 다케다군도, 신겐을 살리려면, 이 전투에 이긴다고 믿고 있으므로, 우에스기의 기마무사가 쳐들어와도, 필사적인 연기로, 신겐의 정체를 숨겼음에 분명합니다. 그래서 마사토라는 빠르게 포기하고, 말머리를 돌렸습니다. 사냥꾼의 시각으로 생각을 했으면 합니다. 사냥감에게 상처를 입혀도, 놓쳤다면, 상대가 누구라도 그런 것은 아무런 자랑이 되지 않습니다. 혹시나 상대한 상대가 신겐이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마사토라는, 짦은 꿈을 나중에 자랑하고 분해하는 정도의 감상적인 사람도 아니었습니다. 이렇게 마사토라의 스스로 돌격법사무장에 의한 신겐의 상처는, 본인들도 상대가 누구인지 잘 모르는 채로, 전설의 일대일 승부로써 계속 이야기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진실은 지금도 안개의 저편에 숨어 있습니다.

 

 

 

 

 

 

https://news.yahoo.co.jp/articles/42dfddb7582ee48aad77870c5565dea4518a14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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