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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길데 없이 술을 좋아했던 우에스기켄신 VS 된장에 신경을 많이 썼던 다케다신겐.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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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길데 없이 술을 좋아했던 우에스기켄신 VS 된장에 신경을 많이 썼던 다케다신겐.

mmplz 2019. 2. 21. 21:52

비길데 없이 술을 좋아했던 우에스기켄신 VS 된장에 신경을 많이 썼던 다케다신겐.

2/20() 18:00

 


일본인의 체질을 과학적으로 해석한, “바른 건강법을 제창하고 있는 오쿠다 마사코 의사


그녀의 저서는 간행되면 항상 베스트셀러가 되어, 지금 가장 주목받고 있는 내과의사이자 작가이다. “일본인은 이제까지 도대체 어떤 병에 걸려서, 무엇을 먹어왔는가?”, “장수를 실현하기 위해 어떤 식사가 중요한가?” 일본인 탕생부터 지금까지의 식사와 생활의 역사를 되돌아 보고, 일본인에게 맞는 올바른 건강식의 오의를 밝혀내는 필자 혼신의 대하연재 시작! 일본인을 장수하게한, 장대한 식사와 생활의 대하로망에 만족함이 있다.

 









술로 목숨을 잃은 우에스기켄신

 

조부의 금기를 지켜서 술에 신경을 썼던 모리데루모토와는 다르게, 술로 목숨을 잃은 사람이 우에스기 켄신입니다.

비사문천(=사대천왕)을 깊이 존경하는 켄신은 의리가 두텁고, 고결한 성품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다케다 신겐의 죽음에 따라 가이국, 현재의 야마나시현을 손에 넣는 기회가 왔어도, “상대의 불행을 이용하고 싶지는 않다,” 고 말하며, 완고하게 병사를 진출 시키지 않았습니다.

 

막부말에 기술된 명장의 언행록등의 문헌에는, 켄신이 혼자서 툇마루에 많아서, 우매보시를 안주로 술을 마셨던 것, 그리고 새로운 가신들과 술을 마실 대로 안주는 우메보시 밖에 없었던 것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메보시는 맛이있을 뿐만 아니라, 밥에 넣으면 부패를 방지하는 역할을 합니다. , 당시에는 싸움의 안주로 먹으면 호흡이 진정되고, 기분이 침작해 진다고 생각되어지고 있었습니다.

 

술을 좋아 한다고는 하지만, 켄신은 취해서 자아를 잃어버리는 것과 같은 행동은 없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많이 마시는가 많이 못마시는가와는 관계가 없었습니다. 그것도 안주가 소금기가 강한 우메보시만 있었다면, 더욱 혈압이 오를 것 같습니다. 거기에 불교의 계율을 엄하게 지키고 있었던 켄신은 고기를 일절 먹지 않았습니다. 신선한 육류나 어류에는 혈관을 좋게 하는 작용이 있습니다. 육류를 먹지 않았던 켄신의 혈관은 탁하게 되어있었을 것이라고 생각 됩니다.

 

157839일 밤의 일입니다. 관동평정을 위해 출진을 일주일 후로 연기했던 켄신은 중신들과 술연회를 열어, 화장실에 서 있는 사이에 뇌출혈을 일으켜 넘어졌습니다. 당시의 의술로는 손 쓸 도리가 없어서, 49세로 죽었습니다. 전국무장을 보면, 아직 창창하다고 할 수 있는 나이입니다.

 

구력(음력) 39일은 현대의 력(양력)으로 바꾸면 4월 하순이 됩니다. 켄신의 영지는 에치고고, 현재의 니이가타현 입니다. 그 밤은 비가 내리고 있었습니다. 날이 추웠을 것입니다. 술을 마시면 혈관이 팽창해서 혈액 순환이 활발해집니다. 그 상태에서 추운 장소에 가면, 이번에는 추위로 혈관이 수축하여, 혈압이 급격하게 오릅니다. 이것이 뇌출혈을 초래한 것이라고 생각 됩니다.

 

현대에도, 겨울철에 따듯한 방에서 추운 화장실이나 욕실에 이동해서 혈류가 올라 뇌출혈, 심근경색 등이 발발하는 예가 있습니다.

 

이 시대는, 뇌출혈 같은 돌연히 넘어져서 반신불수가 된다던지, 언어장애가 나타난다던지 하는 병을 바람병이라고 불렀습니다. 에도시대에 들어와서 중풍이나 중기라고 달리 불리게 되었습니다만, “”, “의 글자를 사용하는 것은, 대육에서는 공기의 흐름이 멈추지 않아, 몸에 나쁜 영향을 미치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이나 로 표현했기 때문입니다.

현재에도 사용하는 감기나 사기 등의 단어가 그런 말이 남은 형태 입니다. 중품의 은 식중독과 같이, 바람의 가운데 있다는 의미 입니다.


그 일에 앞선 1570년 켄신은 한번 뇌출혈이 있어서, 이 후유증으로 왼쪽 발을 가볍게 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술을 그만두고, 조심했더라면 하고 후회를 하게 됩니다.


영민(영지의 백성)의 보양을 꾀했던 다케다 신겐


당시 사람들은 뇌출혈이나 뇌경색이 발생하여 후유증이 생기면, 온천에서 주재하며 반복해서 입욕해서 회복을 했습니다. 현재의 온천은 대체로 관광지 같이 되어 있습니다만, 원래는 피로를 풀고, 병을 치료하기 위한 장소였습니다. 이것을 탕치라고 부르는, 일종의 의료시설이었던 것입니다. 무로마치시대가 되면 각지의 온천의 효능이나 적절한 입력방법에 대해서 이해가 깊어져, 탕치하는데 있어서의 주의서를 게시하는 혼천도 나타났습니다.


전국대명은 스스로 영지에 온천을 모아서, 전쟁에서 상처를 입은 무사를 요양시켰다고 전해져오고 있습니다. 특히 유명한 것이 켄신의 라이벌, 다케다 신겐의 "가쿠시유"입니다. 자기 자신도 온천을 좋아했던 신겐은, 온천이나, 수온이 낮은 광천을 열심히 찾았습니다. 무사뿐만이 아니라, 성 아랫길을 정비했던 기능공들, 광산에서 채굴을 했던 노동자들에게도 이용을 허가 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신겐이 통치하는 가이국은 바다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어서, 소금을 손에 넣는 것이 어려웠습니다. 사람들은 소금이 없으면 살아갈 수 없습니다. 어쩔 수 없이, 태평양에 접한 스루가와 사가미로부터 소금을 구입하고 있었습니다만, 어느날 동맹관계 유지를 잘못해서, 소금을 공급받지 못하게 되어 버렸습니다. 말하자면 소금 기근입니다. 현대라면, 필시 석유의 수출입금지와 비슷했을 것입니다. <그림9>에 당시의 세력도를 넣어 두었습니다.

           

            <그림9> 1568년경의 전국대명 세력도. 소금기근이 일어났던 때의 세력도 입니다. 신겐의 영지는 내륙이라 소금 구하기가 어려웠습니다. 또한, 주변을 강적들에게 둘러쌓여, 상경길은 험했습니다.



이 소동을 알게된 우에스기 켄신은, "전쟁은 병력을 가지고 행하는 것이다. 나는 소금으로 상대를 굴복시키는 것과 같은 짓은 하지 않는다."라고 말하며, 동해의 소금을 곧 바로 신겐에게 보냈다는 이야기는 유명합니다. 고통받는 적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일을 의미하는 "적에게 소금을 보내다"라고 하는 말은, 이 고사로부터 생겨났습니다.


겐신다운 에피소드입니다만, 실제로는 에치고의 소금은 이전부터 가이에서 판매되고 있었고, 겐신이 다른 대명들과 동조하는 것을 싫어해서, 소금의 판매를 중지시키지 않았다는 것이 진상인 것 같습니다. 어떻던간에, 이 사건을 통해서, 목숨을 지탱하는 소금의 입수를 타국에 의존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 신겐은 통감 했겠지요.


그래서 신겐은 된장에 눈을 두었습니다. 신겐의 영지는 대두의 산지이며, 산이 많은 나라의 시원한 기후는 된장을 만드는데 적합합니다. 많이 만들어서 보존 해두면 염분 때문에 부자유스럽지 않고, 소금 그 자체를 섭취하는 것 보다 보양에도 도움이 됩니다. 대두를 발효 시켜서 만드는 된장에는, 질 좋은 식물성 단백질에 더해, 아미노산, 비타민, 그리고 칼륨, 마그네슘등의 광물이 풍부하게 포함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당시의 병법서에도, "된장이 없으면, 쌀이 없는 것보다 죽는 사람이 많다 (쌀이 부족한 것보다, 된장이 부족한 쪽이 몸에 안 좋다)"라고 써 있으며, 모든 무장이 전쟁갈때는 반드시 된장을 지참했습니다. 된장을 그대로 들고 걸어가면 신선도가 떨어지기 때문에, 자주 사용되었던 것이, <그림10>에 그린 "토란줄기 밧줄"입니다. 토란의 줄기에 해당하는 부분을 건조시켜서 밧줄 같이 꼬아서, 된장, 슬, 가다랑어(가츠오부시)를 스며들게 한 것으로, 확실히 말리면 보존이 가능합니다.


실제로 밧줄로 사용하는 것도 가능한데다, 잘라서 따듯한물에 넣으면 토란의 줄기가 건더기가 되는 즉석 된장국이 되었습니다. 맛은 조금 진하지 않다고 합니다만, 실제로는 어떠했을까요.


<그림10> 토란줄기 밧줄. 토란줄기 밧줄의 재료는 토란의 줄기에 해당하는 부분입니다. 보통은 밧줄로 사용하며, 잘라서 따듯한물에 넣으면 된장국이 되어, 물이 없으면 긁어서 염분을 보급하는 일이 가능했습니다.


간편한 된장과 숙성된장


신겐은 만족하지 않았습니다. 된장을 확실히 섭취하려면 어떻게 하면 좋을까 지혜를 짜서, 군사용된장을 고안했습니다. 현대의 신슈된장은, 신겐의 영지에서 만들어지고 있었던 된장의 흐름을 참작한 것으로, 통상적으로 2~3개월을 숙성 시킵니다. 이에 반해 군사용 된장은 20일 정도로 완성 시키는, 말하자면 간편한 된장이었습니다. 원료인 공자반을 뭉개 부셔서, 누룩을 섞어서 허리에 달아서 전쟁길을 출발하면, 전장에 도착할 무렵 된장이 완성되는 훌륭한 물건 입니다.


신겐은 진중에서의 식사에도 신경을 써서, 맹렬하게 "호토"를 만들게 했습니다. 밀가루로 만든 면을 야채와 함께 된장에 끓이는 요리로, 오늘날에는 야마나시 명물이 되어 있습니다. 주변에는 산의 채소가 많이 자라고 있으니, 지참하는 것은 밀가루와 된장뿐입니다. 밀가루는 쌀 보다 가볍고 운반하기 편리하며, 숙달된 사람이 면을 만들면, 밥을 짓는 것 보다 빨리 식사 준비가 가능했겠지요. 산속에서도 몸이 따듯해지고, 영양만점입니다. 유명한 풍림화산의 깃발인장에 "빠르기는 바람과 같고"라고 쓰여 있는 것처럼, 재빠른 이동이 요구되는 전장에서는 매우 합리적인 식사였습니다.


일본에서 처음으로 된장공장을 만들게 한 것은 센다이의 다떼마사무네입니다. 독안룡으로 알려진 마사무네는, 어린 시절 천연두에 감영되어 오른쪽 눈의 시력을 잃었씁니다. 천연두의 백신 접종이 보급될때까지, 천연두는 일본인이 실명하는 최대의 원인이었습니다. 독안룡이라는 별명은 에도시대가 되어서부터 붙여진 것입니다.


똑같은 전국무장이라고 해도, 마사무네는 신겐보다 46살이나 나이가 어렸습니다. 1601년, 센다이에 건축한 아오바성으로 이사했던 마사무네는, 전쟁의 승패를 좌우할지도 모르는 된장을 스스로 보급하기 위해, 성 아랫길에 대규모의 된장 양조소를 건조 했습니다. 대두의 비율을 높여서 풍미를 높이고, 오랜기간 숙성시키는 것으로 보존성을 높인 마사무네의 된장은, 현대까지 계속되는 센다이 된장의 주춧돌이 되었습니다.



원문 출처 : https://headlines.yahoo.co.jp/article?a=20190220-00010104-besttimes-life&p=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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