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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쓰히데의 딸, 가랴샤 부인이 유패된 곳은 어디? “미도노”인가 “미토노”인가? 흔들리는 정설.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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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쓰히데의 딸, 가랴샤 부인이 유패된 곳은 어디? “미도노”인가 “미토노”인가? 흔들리는 정설.

mmplz 2020. 8. 31. 14:26

미쓰히데의 딸, 가랴샤 부인이 유패된 곳은 어디? “미도노”인미토노인가? 흔들리는 정설.

2020827일 교토신문

 

전국무장, 아케치 미쓰히데의 딸, 호소카와 가라샤(玉子)가 혼노지의 변 이후의 단고(=교토시 북부)의 미도노에 유폐되었다는 이야기는 30~40년전에 퍼져, 그 이전에는 미토노가 정설이었다는 연구자의 논문이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미도노와 미토노, 읽기는 거의 비슷합니다. 역사적 사실을 추구하여 각각의 장소를 방문 해보았습니다.

 

논문에 적혀있는 것은, 부립단고향토자료관(미야츠시) 학예원의 모리시마 야스오씨(59). 모리시마씨에 따르면, 에도시에의 지역지 단고슈미야츠부시등은, 가라샤가 단고미토노에 보내졌다고 기록했으나, 단고지역이외에서는 그다지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한편으로, 에도시대에 편집된 미쓰히데의 일대기 아케치 군기, 호소카와가 공식의 역사서 멘코우슈로쿠는 각각 가라샤가 단고의 미노토”, “단고 안 산속 미토노에 보내졌다고 기록하여, 오랜기간 정설로 되어 있었다고 합니다.

 

일반인에게 알려지는 미도노 유폐설의 계기는, 독일인 선교사 헬만 호이뷜스가 1935년에 쓴 무도극 호소카와 가라샤부인입니다. 호이뷀스는, 가라샤를 주재로하는 작품을 구상했었던 작가 모리타 소우헤이의 수필등에 근거하여, 가라샤의 유폐지에 대해 일본의 역사에는 단고의 미토노로 되어 있지만, 사실은 교토부 요사군의 미도노라고 불리는 장소라고 주장했습니다. 미도노에도 발걸음을 해서, 지형이나 교토로부터의 거리가 은둔지로 적합하다는 것등을 이유로 설명을 붙여 주장했습니다.

 

이 이야기를 받아, 다음해에 요사군(=교토의 군. 지역)와 다케노군의 부인회가, 미도노에 호소카와중흥부인 은둔지의 석비를 건립했던 것등에 의해 정설화되어 갑니다.

 

두 지역을 방문했습니다. 산간부의 미도노에는 석비외에, 우물이 남아, “호소카와 가라샤 연고지라고 쓰여진 언덕길도 늘어서 있습니다.

 

전승에도 있었습니다. 미도노 출신의 키노시타씨는, “(고향에 있는) 큰바위 뒤에서 가라샤 부인이 출산을 했다라고 이야기 했던 어머니의 말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쇼와초기에 가라샤가 태어났던 것에 관심을 가진 주민은 적어, “일부 집에만, 전승이 남아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라고 밝힙니다.

 

한편, 단고 미도지구. 미쓰히데의 위패를 모시는 가까운 옥운사의 나가사와 토모오 주지(75)스님은, “가라샤의 이야기는 들었던 적이 없었다라며 놀랐습니다. 오래전부터 교토에 길이 생겨, 여인숙이 늘어서는 등 사람들의 통행도 많았다고 전해집니다. 풍경도 호이뷀스의 유폐의 이미지와 다릅니다.

 

전후, 경제성장과 함께 지역의 활성화가 주장되어, 미도노설이 퍼져 단바설은 사라져 갑니다. 하지만, 그 경위는 정확하지 않습니다. 모리시마씨는 역사에서 정설로 되어있는 것도 불확실한 것은 많습니다. 정설을 믿는 것만이 아닌, 정말로는 어땠을까, 하고 생각해보는 것이 역사의 묘미이다라고 했습니다.

 

 

 

 

 

 

https://news.yahoo.co.jp/articles/e4f4df570374fbf3270096a3494d57afd98cd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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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yahoo.co.j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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