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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분없는 전쟁”이라고 조선에 투항했던 사야가, 일본에도 현창비가 있다.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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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분없는 전쟁”이라고 조선에 투항했던 사야가, 일본에도 현창비가 있다.

mmplz 2019. 6. 12. 20:06

명분없는 전쟁이라고 조선에 투항했던 사야가, 일본에도 현창비가 있다.

2019610일 중앙일보 일본어판

 

일본에서는 당초, 사야가를 실존했던 인물로 받아들이지 않고, 받아들여도 부정적인 인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사야가에 대한 대중적인 관심을 높인 것은 1971년에 시바 료타로가 기행문에서 사야가를 다루고나서입니다.

배신자의 프레임으로부터 대의가 없는 전쟁에 저항한 평화주의자로서 사야가를 재해석하기 시작했던 것도 그 후부터 입니다.

 

와카야마현청 국제과의 야마시타 요시오 국제기획반장은 사야가의 스토리는 영화화하는 이야기도 나왔을 정도 많은 일본인이 용기 있는 인물로 평가하고 있다.”고 서술 했습니다.

 

사야가에 관한 기록은 일본에는 남아있지 않습니다. 조국을 배신했던 사실이 명백하게 되는 경우, 남은 가족이 곤경에 처하는 것을 우려해서 스스로 신분을 명백히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되어 집니다. 단지, 사야가가 화승총과 대포를 잘 취급했기 때문에, 당시 와카야마 지역의 철포부대로서 이름이 알려진 사이가 부대를 통솔했던 스즈키 마고이치가 사야가라고 하는 이야기가 가장 유력합니다.

사이가무리 사야가 마치 오코시 모임의 츠지 회장은 특히 죄가 없는 민중을 잔혹하게 죽이는 것으로 도요토미는 유명했다라고 하며, “사야가는 도요토미가 전쟁을 하는 것에 참을 수 없었던 것 같다.”라고 말했습니다. 당시, 위험 부담을 지고 배신과 다름없는 귀화를 한 것은 강한 신념과 결의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당시, 조선으로서도 사야가를 받아들이는 것은 쉬운 선택은 아니었습니다. 언제 다시 배신할지 모르는 적군의 무장에게 이름을 부여하고 정이품까지 승진 시킨 것은 큰 결단이었습니다. 츠지회장은은 이순신의 함대에 왜군은 전멸했습니다. 사야가가 없었어도 임진왜란의 결과는 변하지 않았을 것이었으나, 화승총과 대포의 덕분에 조선인의 희생을 줄일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라고 서술했습니다.

 

2000년대에 한일관계가 급격하게 개선되어, 사야가는 이른 바 한일우호협력의 아이콘으로서 취급되었습니다. 관련연구도 활발하게 되었습니다. 2012년에는 사야가가 건립한 녹동서원이 있는 대구시 달성군에 한일 우호관도 생겼습니다. 일본에서는 지금도 츠지회장을 중심으로 매년, 사야가를 테마로 한 낭독극 모임을 열어, 초등, 중학생을 대상으로 사야가의 평화사상 등에 관한 수업을 하고 있습니다.

 

츠지회장은 일한관계에는 언제나 나쁜일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라고 하며 지금은 징용공문제 등 몇 가지 어려운 것이 얽혀 있지만, 문재인 대통령이 한번, 사야가의 비를 방문 해주었으면 한다고 말했습니다.

 

https://headlines.yahoo.co.jp/hl?a=20190610-00000033-cnippou-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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