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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대립을 “무턱대고 부채질하는 바보”가 늘어나는 이유
2019년 9월5일 President Online
왜, 한일관계는 이렇게 꼬이게 되었을까요?
정신과의인 와다 히데키씨는 “한일대립은 쌍방에게 있어서 해로움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도 정치가나 관료, 매스컴 등의 소위 똑독한 사람들이 “바보화”해서 꼬였습니다. 그 원인의 하나는 “집단 심리”에 있다”라고 말합니다.
*혐한, 단한감정을 부채질하고 있는 “바보”의 정체
한일대립의 해결 실마리가 보이지 않는다.
소위 징용공재판의 문제는, 한일 청구권협정에 대한 명확한 위반이며, 그 협정 및, 그 근본에 있는 한일기본조약을 한국이 파기하지 않는 한, 민간인의 청구권은 없습니다. 그것은 일본으로서는 양보할 수 없는 부분일 것입니다.
단지, 그렇다고해서, 이 타이밍에 일본이 수출 시에 우대조치를 적용하는 “화이트국가”로부터 한국을 배제한다는 대응을 한 것은, 일본정부가 그 이유를 “안전보장상의 수출관리 문제”로 했다고 해도 “보복”이라고 받아들여져도 어쩔 수가 없을지도 모릅니다.
실제로 이것을 받아들인 한국은 한일군사정보포괄보호협정(GSOMIA)의 파기를 결정 했습니다. 일은 한일 역사인식문제로부터, 안전보장문제로 불길이 옮겨간 모양입니다. 이후, 양국의 정부의 변명은 하나 하나가 대립하여, 그것을 메스컴은 연일 보도하고, 독자나 시청자의 혐한, 단한감정을 계속 부채질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한 험악한 분위기에 있으면서, 한국에서는 그렇게 반일 감정이 높아지지는 않은 채, 대중은 냉정하다고 하는 지적이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타인의 눈이 보이는데서는, 공공연하게 “일본이 좋다”라고는 말 못합니다. 그래서 일본여행을 하지 않는 등의 자숙 모드가 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것에 따라, 일본의, 특히 지방 관광산업은 큰 타격을 받고 있습니다. 악영향을 받은 당사자를 중심으로 일본에도 “정치가들도 좀 더 냉정해졌으면 좋겠다”라고 하는 목소리가 계속 커지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도, 일본과 대립관계가 되는 단점에 대해서, 경제문제를 생각하는 일반시민이 많습니다. 장기불황이 계속되어, 실업자가 높은 가운데, 싸움을 하고 있을 때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요점을 말하자면, 한일 둘다 “현명한 사람”임에 분명한 관가나 관료로 있는 사람들이나 매체 관계자들이 경제적인 손실을 생각하지 않는 것 같은 언동이나 판단을 행하여, 일반대중 쪽이 냉정하게 손해득실을 생각해서 판단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번의 한일 대립은, 대체로 머리가 좋은 사람들의 바보화에 따라 진흙탕싸움이 되었다고 말해도 좋지 않을까요.
*현명한 사람이 아주 간단하게 바보화되는 집단심리의 무서움
본래, 머리가 좋은사람들에의한, 그러한 잘못된 언동이나 비판은 왜 생기는 것일까요?
심리학의 세계에서는, 꽤 이전부터(특히 제2차 세계대전의 심리 메커니즘의 연구에 있어서), 인간은 개인이 판단, 사상하는 경우와, 집단으로 그것을 하는 경우에는, 대답이나 사상의 패턴이 변해버리는 것이 알려져 있습니다.
그 하나의 현상이, “리스키 시프트(Risky Shift)”라고 불리는 것입니다. 인간은 자기 혼자 판단할 때보다, 집단으로 판단하는 쪽이, 오히려 섣부른 판단을 하기 쉽다는 것입니다.
또, 사회심리학의 실험에서는 아래와 같은 것입니다.
어떤 인물이 벤처회사로부터 헤드헌팅을 받았다고 하는 경우를 가정합니다. 조건은, 지금 받고 있는 급료의 2배를 받는 것입니다. 단지, 그 회사는 지금회사보다 불안정적이며, 내년에 도산할지도 모른다는 다른 조건도 있습니다. 이 때, 그 회사가 내년 도산할 위험성이 어느정도라면 그곳에 가는 것을 그만둘지에 대한 조사를 합니다.
*집단이 되면 왠지 “강행 판단”을 하는 바보
혼자서 판단하는 경우에는, 위험성이 10~30%를 선택하는 사람이 많은 한편, 복수의 사람이 의논한 후에는 좀더 위험성을 취하는 경향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집단이 되면 저자세가 되어 보이는 것이 싫어서인지, 무리해서 강행 판단을 하는 경향이 있다고 합니다.
제2차 세계대전의 개전 전에도, 국가의 방향을 취하는 사람들 조차 개인 수준에서는 “개전하지 않는 쪽이 좋다”라고 생각한 사람이 많았는데도, 전체 회의가 되면 강한 자세를 나타내서, 그러한 결과가 되었다고 합니다.
“3명이 모이면 엄청난 지혜가 된다”라는 속담이 있습니다. 혼자서 판단하는 것보다 다수가 판단하는 쪽이, 여러 생각이 나오며, 타당한 결론이 된다고 하는 것이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을 때도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집단의 특성”을 알아두면 손해는 없습니다.
그 밖에도 사회심리학이 밝히고 있는 다양한 집단심리가 있습니다.
*왜 명확하게 틀린 것을 옳다고 주장하는 것인가
한국에서도 일본에서도, 상대국에 대한 강경자세나 태도나 재제를 해야 한다고 하는 의논을 할 때, 자신이 그 이야기의 안에 들어가 있다면, 그것에 동의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느낄 때가 있을 것입니다.
이것이 동조압력이라고 하는 것입니다만, 실제로는, 압력이 없어도, 주위의 의견이 대체로 일치하면, 자신도 그렇다고 동조해버리는 (즉 의견을 내기 전부터 생각이 변해 버리는) 특성이 사람에게 있는 것이 알려져 있습니다.
솔로몬 아슈라고 하는 사회심리학자가 재미있는 실험을 했습니다. 선분을 3개 보여주고 어떤 것이 또 다른 1장의 종이에 그려진 선분과 동일한 길이인지를 판단하도록 했습니다. 눈의 착각이 일어날 것 같은 실험이 아니므로, 95%이상의 사람이 정답을 내놓았습니다.
하지만, 피험자에게 3명 이상의 “야바위꾼”을 섞어서, 그 사람들에게 일부러 틀린 답을 하도록 시키니, 그것에 동조해서 오답을 내는 사람이 나왔습니다. 그것도 30%이상 있었습니다. 압력이 있지 않아도 명확하게 틀린 주변 사람이 낸 대답을 3명중에 1명이상은 선택해버립니다.
단지 3명 중에 1명이다. 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이것이 선거 때가 되면, 상당히 과격한 정책을 내놓아도 그것에 동조심리가 추가되는 것으로 정권을 얻을 수 있도록 대량의 표를 획득할 가능성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전쟁전 일본의 일반시민은 소위 “대본영발표”에 동조하여, 많은 사람이 개전에 찬성했었습니다.
*다른 의견을 주장하는 사람들을 무시하고 배제하는 “집단적 얕은생각”
집단으로 생각하는 쪽이 무난하다고 하는 “정설”도 이상하다고 하는 학설이 있습니다.
혼자서 판단을 해야하는 상황에는, 책임의 소재가 명확하므로, 통계나 과거의 데이터 등을 답습하는 등 다각적이며 또한 신중하게 착수합니다. 하지만, 집단합의로 결정할 때는, 그 판단이 엉성 해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것을 어빙 제니스라고 하는 미국 사회심리학자는 “집단적 얕은생각”이라고 불렀습니다.
자신들의 도덕성을 과도하게 믿어서, 그것에 나쁜 상황의 정보를 차단하여, 또 그 의견에 반대하는 사람들을 적대시하며, 그룹 안(한 나라가 집단적 얕은생각에 빠지면 국민 전체)의 사람이 다른 주장을 하는데 압력을 가합니다.
최근의 고령자에 대한 면허는 빼앗아야 한다라고 하는 논의에서도, 가령 혼자서 그것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가에 대한 보고서를 쓰게 하면, 통계 데이터 등을 조사한 뒤에, 실은 16~24세의 운전자들이 고령자보다 사고를 일으킬 확률이 높으며, 위험한 운전자라는 것을 눈치 챌지도 모릅니다.
또, 면허를 빼앗음에 따라, 지방거주자들 중에는 교통수단을 빼앗겨 집에 갇혀, 그것이 장래의 뇌나 요통의 기능의 저하로 이어질지도 모릅니다. 혹은, 자전거로 바꾸어서 전도, 골절상을 입어, 장애의 원인이 될 위험성이 있는 단점도 상정 가능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집단이 되면, “사고를 줄인다”라는 도덕적인 슬로건이 과대평가되어 그것에 대한 반론이 반 도덕적인 생각이 되는 경우가 있어서, “모두가 그렇게 말하니까”라고 하는 비논리적인 이유로, 면허 빼앗기에 대부분의 사람이 찬성하는 흐름이 만들어집니다.(지방에 가면, 반대가 다수가 되면 반대의 의견이 일어날지도 모르겠지만.)
과제가 무엇이든, “집단으로 판단”하는 경우는, 좀 더 냉정하게 검토하는 쪽이 현명합니다. (물론, 집단의 결론이 타당한 것이 드물지 않지만, 확인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빠지기 쉬운 “집단정신병”의 3가지 패턴
정신분석학의 입장에서는, 사회심리학과 같이 실험을 하지 않았지만, “집단”의 인간관찰로부터 다양한 가설이 제기되어 있습니다.
정신분석을 집단치료에 응용하는 것으로 알려진 윌프레드 비온이라고 하는 정신분석의가 있었습니다. 인간이 무엇인가의 집단이 되었을 때, 깔끔한 “과제”가 주어지지 않으면 불안하게 되어, 일종의 집단정신병과 같은 상태가 된다고 하는 관찰을 하고 있습니다. 비온에 따르면, 인간은 그러한 불안에 대처하여, 집단으로 뭉치려고 하는 경향이 있으며, 아래 3가지의 패턴을 취한다고 합니다.
하나는, “의존 그룹”이라고 하는 것으로, 메시아(구세주)와 같은 강한 리더에게 모두가 의지하여 집단이 뭉치려고 하는 심리입니다. 국가의 혼란기에 독재자가 나타나기 쉬운 것도 이 심리가 반영되어 있다고 생각 됩니다.
예를 들어, 러시아 부틴 대통령에게도, 미국 트럼프 대통령에게도, 국내의 혼란에 탑승해서, 구세주로 보이도록 행동하여, 국민의 꽤 많은 부분을 “의존 그룹”으로 만들어서, 선거에서 강점으로 연동 시키고 있습니다. (의존 그룹의 심리에 있는 사람은 투표율이 높으므로, 지지율이상의 득표로 연결 됩니다.).
*문제인대통령은 “반일”을 이용해서 한국 국민을 조작
2번째는, “전쟁 도피 그룹”이라고 칭해지므로, 그룹의 바깥쪽이나 안쪽에 가상의 적을 만들어서, 모두가 그것과 싸우자고 한다던지, 모두 같이 그것으로부터 피하자고 하여 집단이 뭉치도록 하는 심리입니다.
한국의 문제인 대통령이 국민으로부터 지지율을 높이기 위해서 “반일감정”을 이용하는 것은 이 심리를 적용한 것입니다. 현실에 한국의 시민이 이 집단심리에 동조하여 반일로 국가가 하나로 뭉쳐져 있습니다.
3번째는 “부부 그룹”이라고 하는 것으로, 집단 속에서 커플이 생기면 모두들 축복하는 것으로 그룹이 뭉치는 심리입니다. 이것은 부부가 만들어내는 아이에게 기대한다고 하는 생각이 포함되어 있으며, 기본적으로는 경사라고 모두가 축하하며, 미래에 대한 희망으로 그룹을 뭉치는 효과가 있습니다. 2020동경 올림픽 유치가 결정되었을 때, 전 일본이 축하 무드가 되어, 경기가 호전할 것이라는 희망이 생기는 것이 이 심리를 나타내는 좋은 예일 것입니다.
*아베정권은 국민의 “그룹심리”를 분별했기 때문에 장기집권을
“포퓰리즘”이라고 하는 말이 사용된지 오래되었으나,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정치가가 대중영합과 같은 언동에 의해, 국민을 위와 같은 3개의 “그룹심리”로 모아서, 선거를 유리하게 전개하여고 하는 일이 자주 있습니다.
그렇다고는 하나, 사람들의 마음은 항상 일정하지는 않고, 이러한 “그룹 심리”도 끊임 없이 움직이기 쉬운 상태에 있습니다. 그러한 경향을 숙지하고 있는 정치가는, 국민의 “지금의 심리”를 통찰하면서, “국민은 지금 어떤 그룹심리에 가까운가?”를 생각 한다던지, “어떤 그룹심리라면 조종하기 쉬운가?”를 생각한다던지 합니다. 그런 전술이 딱 맞으면 장기집권으로 연결됩니다.
아베신조 수상도 그러한 기량에 능숙한 정치가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민주당 말기의 혼란기에 아베노믹스를 걸고, 사람들을 “의존그룹”의 심리로 만들었다고 생각했더니, 동경올림픽을 유치해서 “부부그룹”의 희망 모드로 이끌고, 거기에 한국이나 북한을 가상의 적으로 만들어서 “전쟁, 도피 그룹”의 심리를 양성하는 등 때때로 흐름을 바꾸는 것으로 일정 이상의 지지를 모으고 있습니다.
단지, 이 그룹 심리에 휘말려있는 때에는, 사람은 깊게 생각하지 않는 것도 사실입니다.
아베노믹스에 의해 주가가 올랐지만, 실질임금을 낮춰, 달러표시로 GDP를 크기 낮춘 것은 그다지 논쟁이 되지 않습니다.. 내년의 올림픽에 대해서도 그 반동인 불경기도 포함해서 단점을 논하는 목소리는 작습니다. 한국 적대시 정책도 경제적으로는 단점이 클 가능성이 높지만, 피해 받는 당사자 이외는 그 사실에 둔감합니다.
*그룹 심리로 사고정지가 되어 버리지 않도록 노력을
그룹 심리가 무서운 점은, 그 심리에 전염되는 것으로 어느 정도 사고정지가 일어난다는 점입니다.
우리나라가 과거에 전쟁을 시작했다고 하는 완전히 잘못된 의사결정을 한 것으로부터도 알 수 있듯이, 꽤 경험을 쌓고, 꽤 지능을 가지고, 꽤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 매우 쉽게 그룹심리에 맹목적으로 추종해서 치명적이며 틀린 결정이나 판단을 해버립니다.
물론 그룹심리 그 자체가 반드시 잘못되어 있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문제는, 그것과 다른 사고가 불가능한 것입니다. 다른 선택지나 생각을 생각하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자신이 그룹 심리에 오염되어 있지 않은지. 혹은, 그룹이나 세상에서는, 이러한 이야기가 되어있지만, 나라면 어떻게 생각하는지. 상대의 입장이 된다면 어떤 견해가 나오는지. 그러한 자기 체크나 셀프 모니터링은, 똑똑한 인간이 바보가 되지 않기 위해서 필수적인 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닐지요.
와다 히데키(和田 秀樹)
국제 의료복지대학대학원교수.
https://headlines.yahoo.co.jp/article?a=20190905-00029873-president-soc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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